Cayin A-55T - KT88로 연출하는 화사한 고전주의
KT88을 채용한 A-88T과 EL34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한 A-50T, 300B를 채용한 A-300B 등과 같은 다양한 앰프를 연이어 내놓으면서 진공관 앰프의 대중화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회사이지만, 케인 오디오는 필자와 그리 인연이 깊지 않다. 현재 홈페이지의 제품 목록에는 CD 플레이어 6종, 프리앰프 3종, 파워 앰프 4종,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12종, 포노 앰프 3종, 진공관 헤드폰 앰프, FM 튜너 2종 등, 총 30종이 넘는 다양한 기기가 포함되어 있지만, 본지 2007년 4월호에 시청 리포트를 기고한 바 있는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A-88T SE 외에는 공석과 사석을 막론하고 필자가 접해 본 케인 오디오의 앰프는 사실상 없다.
그러나 지금으로쿠터 1년 반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필자가 시청한 KT88 푸시풀 앰프인 A-88T는 세련미 넘치는 깔끔한 디자인으로 보나, 음향의 완성도로 보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기였다. 본지에 기고한 시청 리포트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A88T SE 2007에서 필자가 특필하고자 하는 것은 KT88의 고유 특성에 적절한 변형을 가한 독자적인 음향이다. 그러니까 KT88 특유의 장대한 스케일, 육중한 중량감, 자연스러운 공간감 등과 같은 특성들을 절묘하게 변형하여, 청명함과 온화함 사이의 깔끔한 조화를 이끌어 내는 산뜻한 공간감, 육중함과 절제력 사이의 정교한 균형을 연출하는 정연한 저음역, 음악의 표정을 명쾌하고 예리하게 초착하는 중음역, 시원스럽게 정상까지 치솟지만 자극적으로 흐르지 않는 시원한 고음역 등을 긴박하게 통합하는 현대 음향이 A88T SE 2007에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번에 필자가 시청한 A-55T는 어떤 앰프인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A-55T에 대한 자료를 얻기 힘든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A-50T 보다 훨씬 강력한 버전으로서, (A-50T에 비하여)출력이 5W가 더 높은데, 이것은 (A-55T의) 아우 격인 A-50T에서 출력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EL34 대신 KT88관을 채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는 설명과 함께 정리해 놓은 스팩 이외에는 A-55T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얻을 수 없었다.
사정이 이런 까닭에, 이 자리에서는 스팩을 중심으로 하여 A-55T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A-55T는 프리앰프부에 12AX7EH와 12AU7을 한쌍씩 사용하고 있으며, 파워 앰프부로 오면, KT88 출력관을 푸시풀 구동하여 8Ω 임피던스에서 울트라 리니어 모드로는 채널당 40W, 3극 접속 모드로는 채널당 20W의 출력을 이끌어 내며, 주파수 응답 특성은 10Hz에서 50kHz(-1.5dB), THD 수치는 1%(1kHz), S/N비는 89dB, 입력 감도는 370mV, 입력 임피던스는 100kΩ, 출력 임피던스는 4ㆍ8Ω등의 스펙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앰프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고급스러운 디자인인다. 케인 오디오는 이 앰프에서 고정밀도의 알루미늄 절삭 가공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한 마디로 패널 중앙부 하단에 깍아 놓은 부채꼴 모양의 막곡부, 피아노 마무리로 처리한 매끄러운 섀시, 세련미와 견고함을 아우르는 트랜스포머 덥개, 그리고 특별한 일까지는 아니지만, 진공관들을 좌우 대칭형으로 배치한 모습 등은 A-55T의 품격 자체를 한 차원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A-55T는 어떤 음향을 들려 주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A-88T에 대한 시청 리포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KT88의 음향 특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균형ㆍ절제ㆍ조화라는 고전주의 미학 원칙에 토대를 둔, 세련미 넘치는 미려한 음향을 이끌어 내는 앰프가 바로 A-55T를 감상하고 있다면, 광활하게 펼쳐진 음향 무대, 독특한 공간감을 연출하는 온화한 색채 표현, 강력한 폭발력을 이끌어 내는 다이내믹 등과 같은 KT88에 대한 기존 관념은 잠시 잊는 것이 좋겠따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과부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정연한 대역 밸런스, 중량감보다는 정연함과 사뿐함을 이끌어 내는 저음역, 음악의 표정을 삼삼하게 연출하는 중음역, 자극성과는 거리가 먼 미려한 고음역 등이 A-55T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EL34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리따운 음색, 정연한 선율선, 유연한 다이내믹 등을 KT88에서 연출하는 앰프가 A-55T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A-55T가 추구하는 고전주의적 균형감에 기초를 둔 화사한 선율미는 다양한 음반을 재생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확인 할 수 있었다. MAS의 포스ㆍ린 사라ㆍ파이널 랩의 인터커넥트ㆍ반 덴 헐의 골드워터 스피커 케이블 등으로 구성된 필자의 레퍼런스 시스템으로 가장 먼저 시청한 음반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알프레드 브렌델이 호흡을 슈베르의 '겨울 나그네'(필립스)였다. 이 음반의 재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EL34를 연상케 하는 곱디고운 음색을 전면에 부각하면서, 선율선의 굽이를 사뿐하고 단정하게 펼쳐 보이는 피셔-디스카우의 독특한 음색과 브렌델의 피아노였다. '풍신기'와 '회고' 같으 ㄴ작품에서 살아나야 할 격정이 부드럽게 흐르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A-55T가 보여 주는 만만치 않은 구동력이었다. 필자가 레퍼런스로 사용하는 스피커인 린의 사라에서 정연한 형식미와 유려한 선율미를 이만한 수준으로 이끌어 낸ㄴ다는 것은 A-55T의 구동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만치 않는 구동력은 라두 루푸와 우리 시걸이 협연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번(데카), 크리스티안 치메르만과 사이먼 래틀이 협연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DG), 피에르 앙타이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쿠프랭의 '클라브생곡집'(미라레) 등의 녹음을 재생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A-55T는 이들 녹음 하나하나에 담긴 스케일, 다이내믹, 음색 등을 소담스러운 음향으로 적절하게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볍고 화려한 고음역을 살려내야 하는 루푸의 모차르트 협주곡 녹음에서는 현악 셋션의 화사한 음색을 무리없이 호화해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칫 소란스럽고 자극적인 고음역을 재생해 내기쉬운 양타이의 하프시코드 녹으마에서는 고음역의 찬란한 광채가 다소 부족하지만, 상하 대역의 균형감이 뛰어난 음향을 이번 시처에서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케인 오디오의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A-55T의 이모저모를 살려보았다. 결론을 내려보면, A-55T는 KT88의 음향 특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앰프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관점과 취향에 따라서는 소극적인 발성과 신중한 취향에 따라서는 소극적인 발성과 신중한 음향 조형 방식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A-55T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상식과 선입견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A-55T가 꽤 쓸 만한 음향을 KT88에서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박성수-- 월간오디오 2008년 11월호 - 【 Cayin A-55T 바로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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